소매치기는 계약을 시켜주겠다는 남자의 숨을 끊고 그로 인해 흘러나온 혈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신의 옷자락을 뒤적였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문양이 그려진 종이를 발견했다. 피로 물든 손으로 만진 데다 빗물로 형편없이 젖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형체를 유지하는 걸 보고 소매치기는 서늘한 눈으로 시신을 응시하다 자리를 옮겼다. 아마 앞으로도 쓸 일이 없길 바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악마를 부를 생각도 없이 이 뒷골목에 존재하다 흩어질 거라는 생각뿐이었으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악에차 덤벼들어 죽였던 게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아무리 물어뜯고 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혀놔도 계속 몰려오며 저를 죽이려 드는 이들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소매치기는, 얼룩덜룩해졌던 종이의 문양을 기억해내 바닥에 흥건한 피를 밟고 춤추듯 문양을 그렸다. 다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매치기는 악마를 불러냈고 계약을 진행했다.
악마는 본인을 이야기라 소개했다. 소매치기는 그것에 흥미를 보였다. 소매치기에게 이야기란 익숙한 가십거리였고 새로운 관심거리였으며 골목 밖 여유로운 이들이 언제나 떠들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언제나 읽을 수도, 음을 붙여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대화의 수단이었다. 그러니, 소매치기가 흥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생기 없이 검게 물들어있던 시선에 흥미가 흘러들어 반짝이는 것을 본 악마가 물었다. 나와 계약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소매치기가 답했다. 딱히 생각해둔 건 없고 다른 이가 저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고, 그쪽은 그럴 수 있냐고. 무례하다 할 수도 있는 말투였다. 다만 악마는 개의치 않아했고, 목표는 차차 정하면 된다며 이름을 제게 알렸다. 그것으로 계약이 끝났다. 소매치기는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다 악마가 빌려주고 간 힘을 이해했다.
소매치기는 제게 덤벼 오는 것들을 이후 그동안 봐오던 고양이부터 까마귀, 불길함의 상징이던 동물들로 거대하게 만들어 감정 없이 그들을 처리하고, 털어먹은 이후 자본이 꽤나 쌓였을 때 이야기가 전해오는 쪽지로 대화하며. 쪽지가 알려준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계약자를 만났으며 그의 도움으로 상당한 교육을 받았다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며칠이 지나, 뿔과 문양만 있던 신체가 변화했다. 뿔의 끝부분은 푸르게 물들었고 흰자위 또한 푸르러졌으며 피는 흐르지 않았다. 소매치기는 그때 메르헤나에게 제 이름과 생일이 적혀있던 쪽지를 받았다. 게르마 실라노, 1월 1일생. 이름은 임의로 정한 거라는 추신도 적힌 쪽지를 보고 게르마 실라노는 짧게 웃었다. 제 정보를 짧게나마 알려주는 이 악마가 마음에 들었다.
게르마 실라노는 변형된 신체로 움직이고, 공부하고 시시하다고 느낄때즘 능력 활용을 구상하며 직업을 생각해보고 여행을 시작했다. 그때가 8세 즈음이었을 터다. 물론, 그의 악마가 알려준 신상에 의하면. 그게 아니라면 그는 제 신상을 확인할 일이 없었으니. 그때 가장 처음 향했던 곳은 동부였다.
게르마 실라노는 동부에서 푸른 초원의 유목민을 만났다. 그때도 무감정하기 그지없었던 터라, 그다지 큰 반응은 없었으나 그들과 만났을 때 별생각 없었던 그의 팔을 물고 맛없다 한 인물에겐 조금의 흥미를 느꼈었으리라. 다만 이후가 평화로웠기에 게르마 실라노는 그 기억을 밀어 두고 여행을 다녔다.
제 감정을 어찌하면 효율적이게 사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으나, 그러기 위해선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한 게르마 실라노가 선택한 방안이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 능력을 활용할만한 다른 직업이 보이면 다른 것을 진로로 하는 것 또한 고민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게르마 실라노는 그리 5년 정도 여행 다니며 하나 둘, 오래 사용하지 않았던 감정을 다시금 학습했고 꽤나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꽤나 소식이 없던 악마가 물어왔다.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게르마 실라노가 답했다. 다른 무엇을 본다한들 당신보다는 시시하다고. 게르마 실라노는 어느 순간 소통이 되지 않았음에도 악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게르마 실라노는 10대 후반 즈음엔 성격, 외관, 그리고 그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이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게르마 실라노는 웃으며 거짓과 진실을 섞어 이야기하는 것에 거침이 없어졌고, 사람을 쉬이 구분하게 되었으며 제 직원으로 일할 자들을 뒷골목에서 데려와 키워갔다.
게르마 실라노의 10대가 지나고, 20대가 되자 완전히 알 수 없는 자가 되어갔다. 본래 감정이 닳아있었고 표정이 딱히 없었으니 그의 생각을 읽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그때의 그는 서서히 제 악마에게 주도권을 넘기던 시점이었다. 대화는 얼마 없었으나, 점점 악마와 닮아가는 남자는 당연히 바닥에 있던 저를 끌어올려준 존재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게르마 실라노, 소매치기였던 자는 솔라리움에 대한 신앙심이 그리 높지 않은 자였다. 다만 그렇다 해도 기본적인 신앙은 있었으나, 악마 계약자가 된 이후에는 완전히 바닥을 기었다. 아니 바닥이라도 기면 다행일 수준이었다. 게르마 실라노의 20대는 솔라리움에 대한 신뢰나 기본적인 신앙이 완전히 바닥을 뚫고 들어가 다시 오를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졌고, 그를 대신해 그의 악마에 대한 신앙이나 신뢰가 높아졌다. 그때부터 맹신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으리라.
제대로 무기를 구한 것도 그때 즈음이 처음이었다. 게르마 실라노는 이전에 검술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고, 검을 오래 들지 않은 지금의 신체라면 가벼운 검이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른 것이었다. 그 결과로 게르마 실라노의 검은 얇고 긴 세검류였다 할 수 있으리라. 물론, 본인이 말하는 처형 외에는 딱히 사용한 적은 없다지만 그의 말을 믿는가?
게르마 실라노의 정보회사는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10대 초반에 시작해서 10대 중후반에 완전히 구색을 갖추고 운영되기 시작했다. 게르마 실라노는 악마의 영향으로 서서히 키가 컸고, 신체 또한 그에 맞춰 균형 잡힌 모양을 갖췄다. 20대 초반 게르마 실라노는 본래 영양상태로는 달성하지 못했을 키를 뛰어넘어 거인이 되었다. 다만, 본래의 망가진 식습관이나 수면습관을 유지한다 해도 사망하지 않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본래도 아끼지 않던 제 몸을 더욱 막 다루는 경향이 생겼다.
키가 큰 이후 그의 분위기와 특유의 표정, 그리고 시선이 맞닿았을 때 느껴지는 위압감으로 인해 게르마 실라노를 굳이 건드리는 자는 없었다. 괜히 오해해 그에게 해를 당하기 싫다는 생각에서 한 것이었겠으나 게르마 실라노는 그를 알면서도 그들의 생각을 고치지 않았고 상당히 편히 다닐 뿐이었다.
게르마 실라노의 사업은 알음알음 알만한 이들은 알만한 곳으로 이름이 퍼지며 그의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할 수 있으리라. 또한, 그 직원들 또한 일에 빠르게 익숙해져 그들의 일처리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게르마 실라노의 표정과 감정 또한 빠르게 닳아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때즘 게르마 실라노의 얼굴에 흉터가 생겼다. 원인은 바닥에 떨어진 조각이 시중에 이따금 나오던 보석이라는 걸 알았는지 지니고 도망가려다 직원들의 손에 솔라리움의 곁에 도달했다.
고통에 익숙하던 당시의 게르마 실라노는 직원들에게 귀찮게 만들어 미안하다며 가볍게 넘기고, 원인의 손에 들어갔던 제 조각들을 그대로 불에 채웠다. 딱히 다시 끼울 필요는 없었다 생각했기 때문이며, 지금 상황이 딱히 건드리지 않게 하는 것에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판단하에 한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