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는 악마 계약을 하기 전에는 시궁창에 가라앉고 있었기에 딱히 삶에 미련이 없었다. 그는 메르헤나와 계약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중한 사람이 없었고 따르는것이라고는 메르헤나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메르헤나가 죽으라고 하면 제 목숨을 기꺼히 바칠 수 있는 상태인 거였다. 다만 그런 소매치기가 예상하지 못한것은 아마도, 메르헤나가 저보고 살라고 한 것이리라.
그것도 이야기 그 자체인 메르헤나가 본인의 일부나 다름없는 수필서를 하나 태워가면서까지 제게 말을 전하자 소매치지는 많이 의아했고 조금 슬펐다. 메르헤나가 겨우 제게 목소리좀 전달하자고 신체를 막 다루는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게르마 실라노가 된 이후의 소매치기는 메르헤나가 원하는대로 살기로 했다. 살아보기로 했다.
딱히 아무런 생각 없던 나날중에서도 혹은 이전처럼 미친개마냥 싸우길 망설여 온 몸에 금이 갔을때도 그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메르헤나를 탓했다. 아직 그가 메르헤나를 확실히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발언이었다.
"나 아파요. 메르헤나님, 내 악마. 당신 위대하다면서요? 난 당신이 책까지 태우면서 내게 살라고 한것 때문에 살아가고 있어요. 살고 싶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말 한마디로. 그러니까., 그쪽 때문이에요."
지금의 게르마 실라노가 봤으면 표정이 가라앉아 서늘하기 그지없었을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