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운 여름이었고 시험에 앞서 여름 보충수업이 있었으며 하필 에어컨이 고장났기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교실에 가득했다. 대다수의 학생은 자고 있었고 선생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으며 일어나있는 이들에 의한 사각거림, 하교하고 놀고있는 외부의 학생들에 의한 웃음소리와 같은 소음만이 3층에 있는 교실에 울렸다.
선풍기만 돌아가는 교실은 매우 더웠다 할 수 있다. 다만 게르마 실라노는 덥지도 않은지 제 옆에 앉아 펜을 움직이는 이를 보다 가볍게 제 손등을 짝의 볼에 가져다 댔다. 옆자리, 롤랑 세르반도니는 그 손길에 흠칫 놀라나 싶더니 이내 시원함이 기분 좋은걸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대왔다. 게르마 실라노는 문득 작게 웃었다. 기분 좋은 온기였다.
그렇게 손을 대고 있던 게르마 실라노는 제 가방안에 부채가 있었음을 기억했다. 손을 때지 않은체 몸을 가방쪽으로 기울이고, 지퍼가 갇힌 제 가방을 좀 휘적거리다 부체를 찾아낸 게르마 실라노는 느릿히 손을 때고 롤랑을 향해 부체질을 해갔다. 인위적인 시원한 바람이었고 종이가 날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아마 한사람 시원하게 하기는 충분했으리라.
비라도 오면 조금 시원해질까 생각하며 게르마 실라노는 설렁설렁 부쳐주던 부채를 접고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있기엔 지루했고 어차피 보충수업같은걸 하지 않아도 그의 성적은 충분히 나왔기에 지금 깨어있는 이들을 위해 자판기에서 음료라도 뽑아올 생각이었다. 교실을 스캔해 깨어 공부하는 수를 파악하고 조용히 교실 밖으로 나온 게르마 실라노는 롤랑 세르반도니 외 여럿의 시선이 제게 향해있던걸 몰랐다.
시선은 느껴졌으나 그 주인이 누군지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는게 정확할 터였다. 물론 본디 게르마 실라노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아하는 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것도 있으리라. 교실 내부에서 저벅이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시선은 롤랑 세르반도니에게 돌아왔다. 지금 깨어있는 이들은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또한 지금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학생 대부분이 연애에 충분한 환상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였다. 그러니 그들 모두 공부하면서도 이따금 게르마 실라노의 창가자리를 흘깃였는데 그러면서 손을 대고 있다거나 부체질을 해주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흥미 가득한 시선이 롤랑 세르반도니에게 쏟아졌다.
게르마 실라노는 본인은 알면서도 무시했겠지만.., 외모나 성적이나 키와같은 면으로, 한참 단순하게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성격은 몰라도 얼굴은 빼어났으니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며 그의 분위기와 같은 요소가 환상을 증폭시켰다고 할 수도 있었으리라. 물론, 게르마 실라노 본인은 모를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반의 대부분은 아는 이야기였다. 그에대한 소문도 여럿 있었고 그걸 많은이들이 이야기하니 모를수가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롤랑이 쏟아지는 시선에 파묻혔을때 게르마 실라노는 자판기 앞에서서 무얼 좋아할까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게르마 실라노는 본인의 취향도 몰랐지만 다른 이의 취향은 가깝지않은이상 더더욱 알아보지 않는 자였기 때문에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게르마는 결국, 가장 무난할 것 같은 사이다를 골랐다. 하나, 둘.. 덜컹이며 내려오는 사이다를 주워 안듯 들고, 다시금 발을 옮겨 교실로 향했다. 더위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전달해줄 시간이었다.
사이다를 안고 다시금 저벅여 교실에 온 후 게르마 실라노는 묘해진 교실의 분위기를 보고 느리게 갸웃이다 하나씩 책상에 두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와 자리에 앉은 이후, 게르마 실라노는 롤랑을 잠시 보나 싶더니 책상을 톡톡 건드려 시선을 끌었다.
"롤랑, 너도 사이다 마시면서 해."
잔잔히 가라앉아있던 목소리가 롤랑 세르반도니에게 말을 걸고 이어 롤랑 세르반도니의 시선에 사이다가 잡혔다. 또한 잔잔히 미소짓고있는 게르마 실라노의 얼굴또한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이미 곡선을 그리고있던 눈이 예쁘게 휘어지고, 탁, 짧게 사이다가 놓아지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우스갯 소리인듯한 말이 롤랑에게 속삭이며 날아왔다.
" 사이다를 안받는걸 보면, 혹시 내 손이 더 좋았다거나? "
이후 말이 없자 게르마 실라노는 짧게 웃은체 농담이었다며 일축하고, 편하게 마시라며 사이다를 롤랑의 책상으로 살짝 밀어주었다. 이어 다시 흘깃였을때 게르마 실라노는 선풍기 바람에 페이지가 넘어가 다시금 펼친 노트를 펜으로 살짝 두드리다 눈을 굴려 롤랑 세르반도니를 마주봤다. 두번째 눈 마주침이었다.
마주본 시간은 짧았으나 게르마 실라노는 생긋 웃어보였다. 저와 시선이 마주쳐 흠칫 놀라 빠르게 고갤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니 문득 즐거웠다. 게르마 실라노는 그제야 아직까지 미뤄두었던 감정을 받아들였다. 이렇게까지 제가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걸 보면 이게 호감이 아니라면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게르마 실라노는 그보다 명확한 표현으로 감정을 정의할 수 있음을 알았으나, 그러면 이보다 더 말려버릴것만 같아 확실히 정의하는것은 미뤘다.
감정을 다 지니고 있는 상태의 게르마 실라노의 경우, 조금은 조심스러웠다고 할 수도 있었으리라. 타인의 감정을 머리로 이해하고 흉내내는게 아닌, 마찬가지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그 차이는 매우 컸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을터다. 그러니 게르마 실라노는 롤랑 세르반도니가 저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때까지 한번 움직여 보기로 했다. 정보를 다루는건 자신있었으니, 롤랑 세르반도니의 관심사나 호불호는 금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게르마 실라노는 롤랑 세르반도니를 시선에 담았고, 짧게 미소지으며 노트에 글이나 끄적였다.
간단한 문구 하나였으나 이것으로 기분은 꽤나 좋아졌다. 아, 그래 매미소리와 더위, 조용한 거실 바깥의 잔잔한 소음과 함께 시험기간 보충수업이라는것 모두 낭만으로 느낄수 있을만큼의 분위기였다. 그래 여름이었다. 흔히 많이 묘사되는 사랑과 청춘을 위한 여름. 그 모든것이 클리세로 사랑을 도와주는 여름이었고 게르마 실라노는 그 엔딩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볼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게절의 이름에 맞게 풋풋하고 더운 열기를 머물게할 여름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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